“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내가 평화의 왕이신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너희에게 모셔 오도록 허락하신다. 그분께서 너희를 사랑의 열정과 평화로 가득 채우시어, 이 은총의 때에 모든 마음이 그분의 성심을 닮게 하시려는 것이다.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사랑을 단호하고 용기 있게 수호하는 사람들이 되어라. 그러면 이 은총의 때에 그분께서 너희에게 당신의 평화를 주실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교회의 승인 하에)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내가 평화의 왕이신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너희에게 모셔 오도록 허락하신다.
예수님의 성탄절인 오늘, 성모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내가 평화의 왕이신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너희에게 모셔 오도록 허락하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시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천 년도 훨씬 전에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시기 위해 아기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당신의 품에 안고 우리에게 모셔 오도록 허락하신다고 말씀하시며 현재형을 사용하십니다.
분명 예수님의 성탄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 성탄은 지금도 매번 새롭게 이루어지는 현재의 사건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우리와 달리, 하느님께서는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그분께는 모든 것이 언제나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과거에 태어나신 예수님을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다시 우리 가운데 태어나시는 예수님을 맞아들이고 그분을 경배합니다.
옛날 그러하셨던 것처럼, 성모님께서는 이번 성탄에도 평화의 왕이신 당신의 아들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우리에게 모셔 오십니다. 이 성탄에 필요한 것은 크리스마스트리나 카드, 선물 교환이나 파티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자요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 없이 이 성탄절은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습니다. 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 인생은 미래도, 희망도, 영원한 생명도 가질 수 없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분을 이번 성탄에 우리에게 모셔 오고 계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10-12)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베들레헴의 어느 동굴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을 보기 위해 서둘러 달려갔던 목자들처럼, 우리 역시 구유와 감실과 십자가가 있는 성당으로 달려가 그분 앞에 무릎 꿇고 깊이 경배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그 어느 것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오직 가난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참된 행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만날 수 있는 곳은 바로 성당입니다. 성당에는 그분이 태어나신 구유, 매 미사 때 그분께서 새롭게 육화되시는 제대, 그분의 몸이 모셔져 있는 감실, 십자가와 말씀 등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통해 예수님의 현존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사제가 그곳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탄절에, 이 성당은 우리의 새로운 베들레헴입니다.
이 성탄절에 우리가 하느님께 청해야 할 것은, 성모님과 사제를 통해 매일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언제나 활짝 열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도 매이지 않고, 오직 예수님께만 열리고 그분께만 매이게 해 달라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너희를 사랑의 열정과 평화로 가득 채우시어, 이 은총의 때에 모든 마음이 그분의 성심을 닮게 하시려는 것이다.
예수님 탄생 때,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루카 2,14) 이 찬미 안에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이 찬미를 가장 먼저 듣고 예수님을 찾아가 경배했던 사람들, 곧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입니다. 그들은 천사의 말과 하늘 군대의 찬미를 듣고, 예수님의 탄생과 그 표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본 것을 그대로 믿었으며, 자신들을 위해 구원자를 보내 주신 하느님을 찬미하며 기쁨 속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메주고리예는 오늘날의 새로운 베들레헴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메주고리예 발현을 통해, 매 미사 때마다 예수님께서 제대 위에서 새롭게 태어나시며 성체 안에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온 세상에 알리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새로운 베들레헴의 목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을 자신들을 위한 구원의 표징으로 믿고 받아들였던 그들처럼, 우리는 하얀 작은 빵의 형상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님,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시는 말씀이신 예수님을 우리의 구원을 위한 표징으로 굳게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베들레헴의 목자들이 지녔던,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믿음을 지니도록, 마음으로 기도하고, 기도가 삶이 될 때까지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끝은 우리 마음의 완전한 변화, 곧 예수님의 성심을 닮는 데까지 이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사랑의 열정과 평화로 가득 채워 주시어, 우리의 마음이 그분의 성심을 닮게 된다면, 우리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말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사랑을 단호하고 용기 있게 수호하는 사람들이 되어라. 그러면 이 은총의 때에 그분께서 너희에게 당신의 평화를 주실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을 위해 많은 것을 방어하고 지켜야 합니다. 생명과 안전, 권리와 재산에 위협이 닥칠 때, 우리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나섭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너희 하느님의 사랑을 단호하고 용기 있게 수호하는 사람들이 되어라.” 하고 부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수호하라는 이 말씀은, 그 사랑이 많은 이들에게 무시당하고 거부당하며 심지어 박해받고 있다는 현실을 드러냅니다. 이 현실은 오늘날만의 일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도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사가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10-11)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고 말한 요한 복음사가는, 자기 서간에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8)라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해 이렇게 증언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1요한 4,9-10)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이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이 사랑으로 우리는 죄와 죽음에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랑에 비길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바로 이 하느님의 사랑을 단호하고 용기 있게 수호하는 사람들이 되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 사랑을 수호하기 위해 단호하다는 것은, 이 사랑과 맞서는 모든 것을 과감히 버리고 오직 하느님의 사랑만을 선택한다는 뜻입니다. 타협도, 혼합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하느님이 사랑이심을 삶과 죽음으로 보여 주신 예수님께서는,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시어 수많은 박해와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당신을 거부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진리이시기에 언제나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무르셨고, 그 사랑을 끝까지 증거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 매일의 삶 속에서 그 사랑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 사랑을 단호하고 용기 있게 전하고 증언하며 지켜야 합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고 하신 임마누엘 하느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두려움 없이 복음을 증거하기를 바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마태 10,2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