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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남 신부 메시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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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오늘 나는 너희가 아직도 하느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모든 이를 위해 기도가 되고 축복이 되라고 너희를 부른다어린 자녀들아다른 이들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라하느님을 향한 기도와 사랑을 지닌 긍정적인 사람들이 되어너희의 삶으로 다른 이들에게 하느님 사랑의 표징이 되어라나는 나의 모성적 축복으로 너희를 축복하며내 아들 예수님 앞에서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전구하고 있다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교회의 승인 하에)

 




사랑하는 자녀들아오늘 나는 너희가 아직도 하느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모든 이를 위해 기도가 되고 축복이 되라고 너희를 부른다. 

창세기에 따르면 아담과 하와는 인류의 첫 조상이며그들에게서 태어난 첫 형제는 카인과 아벨입니다카인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제물은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아우 아벨의 제물만을 기꺼이 굽어보시자 분노를 품게 됩니다그는 아우 아벨을 들판으로 데리고 나가 결국 그를 죽입니다그 뒤 하느님께서 카인에게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시자카인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대답하며 모른다고 잡아뗍니다(창세 4,3-9 참조).

이 성경 이야기는 형제 사이의 갈등뿐 아니라모든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폭력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 근본적인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더 나아가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서로 함께 공존해야 하고서로의 생명과 안위를 지켜 주어야 할 책임이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구약성경 안에서도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표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이스라엘 백성은 이를 매우 조심스럽게 사용했습니다심지어 하느님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여겨 ‘야훼’ 대신 ‘엘로힘이나 ‘아도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습니다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시며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복음서 곳곳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셨고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하도록 이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호칭을 통해 하느님과 인간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밝혀 주셨습니다하느님은 아버지이시고우리는 그분의 자녀이며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서로 형제자매라는 것입니다곧 인류 전체가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하나의 대가족임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형제자매라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교회 생활 속에서나 전례 안에서그리고 일상의 자리에서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형제자매라 부릅니다예수님께서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모두 그분의 자녀이기에그로 인해 우리는 당연히 서로 형제자매로 살아가야 함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있다면“사랑하는 자녀들아오늘 나는 너희가 아직도 하느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모든 이를 위해 기도가 되고 축복이 되라고 너희를 부른다.”라는 성모님의 말씀이 결코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이 세상 모든 사람그 가운데 아직 하느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이들 또한 하느님과 성모님의 자녀이며 우리의 형제자매이기 때문입니다그렇기에 우리는 하느님 가정의 한 일원으로서 그들에 대해 형제적 책임을 지니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형제적 책임을 살아낼 수 있을까요성모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가 되고 축복이 되라고 하십니다이는 단순히 그들을 위해 한 번 기도해 주고 축복해 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우리의 기도와 축복 안에 언제나 그들이 함께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우리의 기도가 우리 자신과 우리의 필요에만 머무르지 않고끊임없이 그들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는 초대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 지향은 나 자신과 내 가정을 넘어세상 모든 이에게로 확장되어야 합니다특히 아직도 하느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그 사랑을 체험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우리와 우리 가족의 안녕과 축복만을 구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세상 모든 이가 행복과 평화 안에서 살아가며 하느님의 축복이 언제나 그들 위에 머물도록 청해야 합니다.

 

어린 자녀들아다른 이들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라하느님을 향한 기도와 사랑을 지닌 긍정적인 사람들이 되어너희의 삶으로 다른 이들에게 하느님 사랑의 표징이 되어라

어린 자녀들아다른 이들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라.” 이 말씀은 성모님 메시지 안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표현입니다이 말씀을 듣는 순간자연스럽게 복음서에 자주 등장하는 바리사이들이 떠오릅니다예수님 시대의 바리사이들은 평신도들로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율법을 지키며 거룩하게 살고자 했던 사람들입니다그들은 자신들을 ‘분리된 자구별된 자라는 의미의 바리사이라 불리기를 원했고실제로 그렇게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 그들은 위선자들이었습니다외적으로는 하느님을 섬기고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처럼 보였지만그들의 중심에는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참된 정신보다는 자신의 의로움과 신심을 앞세우며 교만에 빠져 있었습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강하게 꾸짖으셨습니다(마태 23,1-36 참조).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다른 이들과는 다른 사람이 되라고 하실 때그 말씀 안에는 오늘날의 새로운 바리사이가 되지 말라는 경고 또한 담겨 있다고 느껴집니다실제로 교회 안에서도세상 안에서도 스스로를 남들과 다르다 여기며 교만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목격합니다예수님을 배반한 유다가 오늘날에도 존재하듯바리사이 또한 오늘날 우리 안에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바라시는 ‘다름은 그러한 다름이 아닙니다성모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을 향한 기도와 사랑을 지닌 긍정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며 기도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이 됩니다그 사람의 얼굴에서말투에서태도에서심지어 걸음걸이와 뒷모습에서조차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물론 우리 자신의 구원과 평화를 위해서도 하느님을 향한 기도와 사랑을 지닌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그러나 그것이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될 때우리는 쉽게 또 다른 바리사이가 될 위험에 놓이게 됩니다성모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이들의 삶에도 선한 영향을 미치고그들 또한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구원과 평화에 이르도록 초대받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얼마든지 아름답고 그럴듯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그 말이 참되다면반드시 구체적인 행동과 삶의 증언으로 드러나야 합니다그래서 말보다 삶이 더 큰 힘을 지니며사랑으로 살아낸 삶의 증언이야말로 가장 진실하고 오래 지속되는 힘을 발휘합니다바로 이러한 이유로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삶 자체로 다른 이들에게 하느님 사랑의 표징이 되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나는 나의 모성적 축복으로 너희를 축복하며내 아들 예수님 앞에서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전구하고 있다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요즈음 성모님께서는 메시지의 끝에서 이 말씀을 반복하여 들려주십니다성모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축복하시고 전구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이 시기에 이 말씀을 거듭 강조하시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지금 더 큰 축복과 전구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이는 우리가 이전보다 더 힘겹고 어려운 현실 속을 살아가고 있음을 드러내는 징표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힘겨움과 고통을 당신의 것으로 받아 안으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시며 예수님 앞에서 전구해 주시는 성모님께 감사드리며, 그분의 부르심에 기쁜 마음으로 응답합시다.

   
 
 
2025년 12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오늘도 하느님께서는 내가 평화의 왕이신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너희에게 모셔 오도록 허락하신다그분께서 너희를 사랑의 열정과 평화로 가득 채우시어이 은총의 때에 모든 마음이 그분의 성심을 닮게 하시려는 것이다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사랑을 단호하고 용기 있게 수호하는 사람들이 되어라그러면 이 은총의 때에 그분께서 너희에게 당신의 평화를 주실 것이다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교회의 승인 하에

 

사랑하는 자녀들아오늘도 하느님께서는 내가 평화의 왕이신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너희에게 모셔 오도록 허락하신다 

예수님의 성탄절인 오늘성모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아오늘도 하느님께서는 내가 평화의 왕이신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너희에게 모셔 오도록 허락하신다.”라고 말씀하십니다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시제입니다예수님께서는 이미 이천 년도 훨씬 전에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시기 위해 아기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그런데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당신의 품에 안고 우리에게 모셔 오도록 허락하신다고 말씀하시며 현재형을 사용하십니다.

분명 예수님의 성탄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입니다그러나 그 성탄은 지금도 매번 새롭게 이루어지는 현재의 사건입니다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우리와 달리하느님께서는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그분께는 모든 것이 언제나 현재이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과거에 태어나신 예수님을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오늘 다시 우리 가운데 태어나시는 예수님을 맞아들이고 그분을 경배합니다.

옛날 그러하셨던 것처럼성모님께서는 이번 성탄에도 평화의 왕이신 당신의 아들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우리에게 모셔 오십니다이 성탄에 필요한 것은 크리스마스트리나 카드선물 교환이나 파티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 자신이십니다우리의 구원자요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 없이 이 성탄절은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습니다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우리 인생은 미래도희망도영원한 생명도 가질 수 없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분을 이번 성탄에 우리에게 모셔 오고 계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보라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주 그리스도이시다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10-12)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베들레헴의 어느 동굴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을 보기 위해 서둘러 달려갔던 목자들처럼우리 역시 구유와 감실과 십자가가 있는 성당으로 달려가 그분 앞에 무릎 꿇고 깊이 경배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그 어느 것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오직 가난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참된 행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그리고 그분을 만날 수 있는 곳은 바로 성당입니다성당에는 그분이 태어나신 구유매 미사 때 그분께서 새롭게 육화되시는 제대그분의 몸이 모셔져 있는 감실십자가와 말씀 등 모든 것이 있습니다그리고 그 모든 것을 통해 예수님의 현존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사제가 그곳에 있습니다예수님의 성탄절에이 성당은 우리의 새로운 베들레헴입니다.

이 성탄절에 우리가 하느님께 청해야 할 것은성모님과 사제를 통해 매일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언제나 활짝 열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우리의 마음이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도 매이지 않고오직 예수님께만 열리고 그분께만 매이게 해 달라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너희를 사랑의 열정과 평화로 가득 채우시어이 은총의 때에 모든 마음이 그분의 성심을 닮게 하시려는 것이다.

예수님 탄생 때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루카 2,14) 이 찬미 안에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분명히 드러납니다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고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바로 이 찬미를 가장 먼저 듣고 예수님을 찾아가 경배했던 사람들곧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입니다그들은 천사의 말과 하늘 군대의 찬미를 듣고예수님의 탄생과 그 표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그리고 본 것을 그대로 믿었으며자신들을 위해 구원자를 보내 주신 하느님을 찬미하며 기쁨 속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메주고리예는 오늘날의 새로운 베들레헴입니다성모님께서는 메주고리예 발현을 통해매 미사 때마다 예수님께서 제대 위에서 새롭게 태어나시며 성체 안에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온 세상에 알리고자 하십니다우리는 오늘날의 새로운 베들레헴의 목자들이 되어야 합니다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을 자신들을 위한 구원의 표징으로 믿고 받아들였던 그들처럼우리는 하얀 작은 빵의 형상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님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시는 말씀이신 예수님을 우리의 구원을 위한 표징으로 굳게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베들레헴의 목자들이 지녔던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성모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믿음을 지니도록마음으로 기도하고기도가 삶이 될 때까지 기도하고기도하고 또 기도하라고 부르십니다그리고 그 기도의 끝은 우리 마음의 완전한 변화곧 예수님의 성심을 닮는 데까지 이릅니다기도하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사랑의 열정과 평화로 가득 채워 주시어우리의 마음이 그분의 성심을 닮게 된다면우리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말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사랑을 단호하고 용기 있게 수호하는 사람들이 되어라그러면 이 은총의 때에 그분께서 너희에게 당신의 평화를 주실 것이다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을 위해 많은 것을 방어하고 지켜야 합니다생명과 안전권리와 재산에 위협이 닥칠 때우리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나섭니다그런데 성모님께서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너희 하느님의 사랑을 단호하고 용기 있게 수호하는 사람들이 되어라.” 하고 부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수호하라는 이 말씀은그 사랑이 많은 이들에게 무시당하고 거부당하며 심지어 박해받고 있다는 현실을 드러냅니다이 현실은 오늘날만의 일이 아니라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도 그러했습니다그래서 요한 복음사가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10-11)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고 말한 요한 복음사가는자기 서간에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8)라고 선포합니다그리고 그 사랑에 대해 이렇게 증언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그 사랑은 이렇습니다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1요한 4,9-10)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어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이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이 사랑으로 우리는 죄와 죽음에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이 사랑에 비길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바로 이 하느님의 사랑을 단호하고 용기 있게 수호하는 사람들이 되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이 사랑을 수호하기 위해 단호하다는 것은이 사랑과 맞서는 모든 것을 과감히 버리고 오직 하느님의 사랑만을 선택한다는 뜻입니다타협도혼합도 있을 수 없습니다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하느님이 사랑이심을 삶과 죽음으로 보여 주신 예수님께서는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시어 수많은 박해와 고통을 겪으셨습니다그러나 그분께서는 당신을 거부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그분은 진리이시기에 언제나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무르셨고그 사랑을 끝까지 증거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매일의 삶 속에서 그 사랑을 체험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로서예수님의 제자로서그 사랑을 단호하고 용기 있게 전하고 증언하며 지켜야 합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고 하신 임마누엘 하느님 예수님께서는우리가 두려움 없이 복음을 증거하기를 바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마태 10,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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