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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남 신부 메시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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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고거룩함의 길로 이끌도록 허락하신 이 은총의 시기에사탄은 너희를 불안과 증오의 사슬로 얽매려 하고 있다그가 승리하도록 허용하지 마라오히려 어린 자녀들아모든 생명의 거룩함을 위해 싸워라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교회의 승인 하에)

 

 

사랑하는 자녀들아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고거룩함의 길로 이끌도록 허락하신 이 은총의 시기에사탄은 너희를 불안과 증오의 사슬로 얽매려 하고 있다.

제가 사목하고 있는 본당에는 ‘노아라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있습니다노아는 제가 이 본당에 부임한 이후 태어난 아이라그 아이의 성장 과정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 지켜보아 온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노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매일미사에 빠짐없이 참례하실 만큼 신심 깊은 분들이시며어머니 역시 매우 신앙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이러한 가정의 분위기 속에서 노아는 어린 시절부터 정성 어린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습니다.

올해 첫영성체를 받은 노아는 최근 미사 복사로도 봉사하기 시작했습니다매 주일 어머니와 함께 성당에 와서미사 전에 반드시 고해성사를 보고 미사에 참례하거나 복사로 봉사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인상 깊습니다.

그런 노아의 모습은 언제나 대견하게 느껴졌습니다특히 여름 방학이 시작된 요즘에는 평일에도 시간이 될 때마다 어머니와 함께 미사에 참례하고 있습니다오늘 아침에도 노아는 어머니 손을 잡고 미사에 참석했는데미사 도중 어머니의 말에 고개를 조용히 끄덕이며경건하게 참여하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과 깊은 신앙 안에서 아름답게 자라나는 노아의 모습은 제게 큰 감동과 감사의 마음을 안겨주었습니다그리고 그 모자의 모습 안에서 저는 성모님과 우리의 관계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성모님은 우리의 영적 어머니이시며하늘의 어머니이십니다그분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는 자녀들아!”라고 부르시며깊은 애정으로 우리를 감싸시고거룩함의 길로 인도하고자 하십니다.

오늘 메시지에서도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는 자녀들아!”라고 부르시며당신의 사랑과 인도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십니다그러나 이번 메시지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점은성모님의 그 모든 사랑과 인도가 전능하신 하느님의 허락 아래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성모님께서는 이 점을 분명히 밝히십니다마치 예수님의 잉태를 예고하러 온 천사 가브리엘 앞에서 “보십시오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응답하셨던 그 순간처럼지금도 여전히아니 영원히성모님은 오직 하느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시는 분이심을 우리는 다시금 되새기게 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거룩함의 길로 이끄시는 성모님의 모든 행위는 그 자체로도 선한 일이지만그 모든 것이 전능하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밝히심으로써성모님께서는 당신이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가장 우선에 두시는 분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우리 역시 성모님처럼아무리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자신의 공로로 삼거나 자신에게 영광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우리는 모든 일과 모든 순간에 모든 공로를 오직 전능하신 하느님께 돌리며그분께만 영광과 찬미를 드려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을 통해 우리를 사랑하시고우리를 거룩함의 길로 이끄시며마침내 구원과 평화에 이르게 하십니다그러나 사탄은 그와는 정반대의 길로 우리를 끌고 가려 합니다그는 우리를 불안과 증오의 사슬로 얽어매어 사랑과 평화그리고 구원을 앗아가려 합니다또한 우리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만들고하느님과 성모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며이웃과의 불화 속에 머물게 만듭니다.

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계시는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가 승리하도록 허용하지 마라오히려 어린 자녀들아모든 생명의 거룩함을 위해 싸워라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탄이 승리하는 순간은 바로 우리가 그에게 우리 마음의 문을 열었을 때입니다우리가 그의 존재와 활동을 인식하고단호하게 “너는 내 마음과 내 삶에 들어올 수 없다.”고 선언한다면사탄은 결코 우리 안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아무리 그가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닌 존재라 할지라도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한 그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바로 그렇기 때문에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그가 승리하도록 허용하지 마라.”고 간곡히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느님과 성모님만이 우리 안에서 승리하시도록어떤 상황에서도 그분들께 “라고 응답하며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 맡겨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을 주셨으며그 생명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십니다그중에서도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어그분 생명의 숨결을 받아 존재하게 되었습니다인간 안에는 하느님을 닮은 거룩함이 자리잡고 있으며이는 인간 존재의 존엄성과 본질을 이루는 핵심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이 거룩함을 무너뜨리기 위해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고 공격합니다왜냐하면 거룩함이 파괴되어야 인간이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마침내 멸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인간 안에 깃든 거룩함을 회복시키고우리를 구원의 길로 이끄시기 위해 당신의 외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그리고 오늘날 이 시대에는 메주고리예를 통해 성모님을 보내시어모든 생명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우리를 초대하고용기를 북돋아 주고 계십니다.

이번 달 성모님의 메시지를 통해 우리가 받은 사명은 분명합니다그것은 사탄에게 단호히 ‘아니오라고 말하고모든 생명의 거룩함을 위해 용기 있게 싸우는 것입니다다시 말해모든 생명의 주님이시며 거룩함 그 자체이신 하느님의 편에 서서생명과 거룩함을 지키고 실현해 나가는 것이며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 앞에서는 언제나 ‘라고 응답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우리를 사랑하시며 거룩함의 길로 인도하시는 성모님우리의 어머니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그리고 그 성모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시는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그 뒤에 계시기에우리는 사탄과 그의 어떤 공격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 33).
   
 
 
2025년 6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오늘도 나는내가 너희와 함께하며너희를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 인도할 수 있음을 전능하신 분께 감사드린다너희와 너희의 영적인 삶을 파괴하는 이념들은 덧없는 것이다어린 자녀들아나는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하느님과 함께라면 너희에게 미래와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교회의 승인 하에)

 

 사랑하는 자녀들아오늘도 나는내가 너희와 함께하며너희를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 인도할 수 있음을 전능하신 분께 감사드린다. 

오늘은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 44주년 기념일입니다. 44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우리를 찾아오신 성모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런데 왜 성모님께서는 이토록 긴 시간 동안 계속해서 우리를 찾아오고 계신 것일까요오늘 주신 메시지 안에서성모님께서는 그 이유를 분명히 밝혀 주십니다바로 우리와 함께하시며우리를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 인도하시기 위해 성모님께서는 지난 44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메주고리예를 통해 우리 곁에 오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모님께서는 왜 우리와 함께하시며우리를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 인도하려 하시는 것일까요그것은 무엇보다도 성모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성모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어머니이시며우리는 그분의 사랑받는 자녀들이기 때문에 성모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물러 계십니다더욱이성모님의 눈에 우리는 여전히 어린 자녀들이기에그만큼 더 많은 보호와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멸망이 아니라 구원의 길로 나아가기를 원하시며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위해 우리 곁에 계십니다그리고 그렇게 우리와 함께하시며기도하고 믿으며 회개하고사랑하고 용서하며 단식하고거룩하게 살아가는 법을 친히 가르쳐 주십니다그리하여 결국 우리를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 인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우리를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 인도할 수 있음을 전능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이 말씀을 통해 성모님께서는 다시금메주고리예 발현의 주체는 다름 아닌 전능하신 하느님이심을 분명히 밝혀 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 또한 성모님께서 그러하시듯성모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 인도하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깊은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44년 동안성모님을 당신의 예언자요우리의 어머니요영적인 스승으로 보내 주신 하느님 아버지께그리고 그 발현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성모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실 하느님께우리의 온 마음을 다하여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립시다.

  

너희와 너희의 영적인 삶을 파괴하는 이데올로기들은 덧없는 것이다어린 자녀들아나는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하느님과 함께한다면 너희에게 미래와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지난 44년 동안성모님께서는 당신의 수많은 메시지 안에서 단 한 번도 이데올로기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신 적이 없습니다그렇다면 이데올로기란 무엇일까요일반적으로 이데올로기는 사회나 체계의 근간이 되는 사상적 틀을 의미하며인간과 사회역사세계를 해석하고 그 방향을 제시하는 체계적이고 집단적인 신념 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또한 이 용어는 종종 정치적 목적이나 지배 논리와 연결되어 사용되곤 합니다자본주의,공산주의사회주의파시즘그리고 민족주의 등은 모두 대표적인 이데올로기의 예입니다

성모님께서는 특정 이데올로기를 명시적으로 지적하지는 않으셨지만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와 너희의 영적인 삶을 파괴하는 이데올로기들은 덧없는 것이다.” 그렇다면우리와 우리의 영적인 삶을 무너뜨리는 이데올로기들은 어떤 것들일까요하느님 대신 돈이나 재물물질권력힘 등을 거짓된 신처럼 섬기게 만드는 모든 사상과 태도는결국 우리와 우리의 영적인 삶을 파괴하는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안에서 다양한 이데올로기의 영향 아래 살아가고 있으며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이 모든 이데올로기들이 결국은 덧없이 지나가는 것들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그렇기에 우리의 마음과 정신그리고 영혼을 그것들에 빼앗기지 말고참된 미래와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오직 한 분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간곡히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성인이 되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과 관련된 한 가지 일화가 떠오릅니다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교황님은 폴란드 출신이셨습니다폴란드 크라쿠프 대교구장이자 추기경이었던 카를 보이티와는 공산주의 정권 아래 있던 조국 폴란드의 현실 속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선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공식적으로 폴란드를 방문하셨고이는 공산주의 정권에 큰 위협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교황님께서는 하느님을 인간의 삶에서 밀어내려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특히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에 맞서시며 그 종식을 위해 다방면에서 헌신적으로 노력하셨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인 1989냉전 시대의 상징이었던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동독과 서독이 하나의 독일로 통일되었고같은 해 체코헝가리 등 동유럽의 공산 정권들도 잇따라 붕괴되었습니다폴란드 역시 이 역사적인 흐름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공산주의 정권의 몰락과 민주 정부의 수립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과 폴란드 국민 모두에게 크나큰 기쁨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의 한가운데서교황님은 또 다른 근심에 잠기셨습니다모든 것이 마치 해결된 듯 보였지만이제 민주화된 폴란드가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됨에 따라 폴란드인들이 돈과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고도덕적으로 타락하며하느님을 뒷전으로 미룬 채 영적으로 나태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이는 시대의 흐름을 영적인 눈으로 꿰뚫어보시는 교황님의 예언자적 통찰이었습니다안타깝게도 교황님의 그 우려는 시간이 지나며 상당 부분 현실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가고서서히 사라져갑니다돈과 재물권력과 힘명예와 이 세상그리고 온갖 이데올로기들까지도 모두 덧없고영원하지 않으며결국은 사라질 것입니다오직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만이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합니다우리가 하느님과 함께할 때만 비로소 우리에게 참된 미래가 있고영원한 생명이 주어집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성모님께서는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우리와 함께하시며우리를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로 인도하시고끊임없이 우리에게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간곡히 호소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025년 5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이 은총의 때에 나는모든 사람이 평화를 이루고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희망과 평화 그리고 기쁨의 사람이 되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어린 자녀들아그분 자신의 용기와 의탁의 성령의 힘으로 너희를 가득 채워 주시도록 성령께 기도하여라그러면 이 때가 너희에게 선물이 되고거룩함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를 사랑한다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교회의 승인 하에)

 

사랑하는 자녀들아이 은총의 때에 나는모든 사람이 평화를 이루고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희망과 평화 그리고 기쁨의 사람이 되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성모님의 말씀대로 지금은 참으로 은총의 때입니다우리 모두를 자녀로 사랑하시는 어머니께서 여전히 우리를 찾아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또한모든 사람이 평화를 이루고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우리 각자가 희망과 평화 그리고 기쁨의 사람이 되라고 어머니께서 부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지금 이 시간은 우리 자신과 세상이 변화되고 새로워질 수 있는 시기이기에분명 은총의 때입니다

우리가 희망과 평화그리고 기쁨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이 덕들을 우리 삶 안에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희망하고평화를 구하며기쁘게 살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그러나 이러한 덕들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충만히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온전히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참하느님이시며 참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특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절망과 불안그리고 슬픔에 잠겨 있던 사도들과 제자들그리고 거룩한 여인들에게 나타나셔서그들 안에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키고평화를 선물로 주셨으며그들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평화를 이루고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우리 각자가 먼저 희망과 평화기쁨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우리를 그 길로 부르고 계십니다참으로 지당하고 옳으신 말씀입니다우리가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그래야 우리를 통해 다른 이들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그럼에도 우리는 흔히 자신이 먼저 변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먼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며실제로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고 요구합니다때로는 그것을 넘어서 타인에게 변화를 강요하기도 합니다그러나 그런 태도는 우리 자신을 더욱 완고하게 만들고다른 이들로 하여금 우리로부터 부정적인 인상만을 받게 하여 오히려 그들의 마음을 닫게 할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사람들이 변화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자신이 먼저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진정한 변화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먼저 시작되어야 합니다.

 

어린 자녀들아그분 자신의 용기와 의탁의 성령의 힘으로 너희를 가득 채워 주시도록 성령께 기도하여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제자들그리고 거룩한 여인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나타나시어그들에게 희망과 평화그리고 기쁨을 주셨습니다그러나 그들이 그 사명을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서는그들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더 큰 힘이 필요했습니다그래서 주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위로부터 오는 힘을 기다리며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사도들은 성모님을 중심으로예수님의 모든 제자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그때 바로 그들 위에 성령께서 내려오셨고온 교회가 성령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특별히 사도들은 더 이상 두려움이나 비겁함을 모르는 이들이 되었습니다그들은 성령의 힘으로 용기백배하였고박해와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그리고 자신들의 모든 것을 하느님 아버지께 온전히 의탁하며부활하신 예수님을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이제 두 주가 지나면 우리는 성령 강림 대축일을 맞이하게 됩니다사도행전 1장에서 보듯이사도들과 제자들은 성모님을 중심으로 그분과 함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성령의 오심을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우리 역시 그 모범을 따라성모님 곁에 모여 그분과 함께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해야 합니다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어 우리를 가득 채워 주시기를 간청해야 합니다만일 바로 그 동일한 성령께서 우리를 충만히 채워 주신다면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담대히 증거하며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온전히 의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때가 너희에게 선물이 되고거룩함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를 사랑한다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그것은 바로우리가 성령의 오심을 위해 기도한다고 해서 그분께서 반드시 오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물론 성령의 오심을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기도하는 일은 마땅하며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그러나 그 기도와 준비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몫이며그것만으로 성령의 강림을 이끌어낼 수는 없습니다성령께서는 바람이 불고 싶은 대로 부는 것처럼당신께서 원하시는 시간과 장소그리고 사람에게 자유롭게 임하시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성령의 강림은 전적으로 위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셔야 우리는 비로소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다그리고 바로 그 거룩함 안에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향한 여정을 계속해서 걸어갈 수 있습니다우리의 힘이 아니라하느님의 성령의 힘곧 부활하신 예수님의 성령의 힘이 우리의 삶과 신앙의 여정을 움직이는 참된 원동력임을 우리는 언제나 기억해야 합니다.
   
 
 
2025년 4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불화이기심그리고 죄의 바람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불화와 멸망으로 이끌고 있다어린 자녀들아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느님과 기도로 돌아오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그래야 너희 마음 안에서도너희가 살아가는 이 땅 위에서도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어린 자녀들아나는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에지치지 않고 회개하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교회의 승인 하에)

 

사랑하는 자녀들아불화이기심그리고 죄의 바람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불화와 멸망으로 이끌고 있다어린 자녀들아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느님과 기도로 돌아오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그래야 너희 마음 안에서도너희가 살아가는 이 땅 위에서도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불화와 이기심그리고 죄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인간 상호 간의 관계까지도 단절시킵니다그 결과 초래되는 것은 바로 불화와 멸망입니다이 참혹한 현실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자녀들에게 성모님께서는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경고하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성모님께서그 진실을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인 우리에게 전해 주실 때그분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그 고통은 마치 마음이 녹아내리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일 것입니다자녀들이 불화와 멸망의 길로 치닫는 모습을 지켜보며 고통을 느끼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육신의 부모도 그러하거늘우리의 영적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느끼시는 고통은 얼마나 더 깊고 애절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의 안타까운 처지를 슬퍼하시며 경고하는 데서 멈추지 않으십니다그분은 우리에게 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십니다그 길은 바로 하느님과 기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하느님께 돌아가고기도 안에서 그분과 다시 연결될 때우리는 비로소 평화를 되찾고 멸망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이 단순하지만 깊은 부르심—‘하느님과 기도로 돌아가라는 초대를 우리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이 부르심은 단순하게 들릴 수 있으나불화와 멸망에 이르지 않는 유일한 길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성모님의 이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지금 이 순간부터 응답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지 않고기도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 안에는 진정한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평화 자체이시며 평화의 근원이신 하느님께서바로 우리의 기도를 통해 우리 마음에 평화를 선물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오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로마 8,28). 그렇습니다우리야말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이며그분의 계획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이들입니다하느님을 사랑하고그분의 부르심에 따라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는 우리에게는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이룹니다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 위에서도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집니다하느님께서는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믿음과 그분을 향한 사랑을 보시고모든 것을 친히 안배하시며 섭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모든 희망을 두고그분의 가르침과 길을 따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이 땅 위에서도 모든 일이 순조롭고 평화롭게 이루어짐을 체험한 시편 저자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행복하여라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 1,1-3).

 

어린 자녀들아나는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에지치지 않고 회개하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은 피로를 모릅니다사랑은 지치지 않습니다성모님께서 지난 43 10개월 동안 단 한순간도 피로하거나 지치지 않으시고끊임없이 회개하라고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는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우리가 회개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지치지 않고 우리를 회개로 부르시는 성모님의 사랑은단순한 애정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깊이 염려하시는 어머니의 절절한 사랑입니다이처럼 성모님의 사랑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우리는 과연 그 사랑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 있는지그리고 그 사랑을 온 마음을 다해 받아들이고 있는지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2025년 3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가 회개로 초대받은 이 은총의 때에, 나는 너희를 격려한다. 어린 자녀들아, 내 아들 예수님의 성심에서 멀어진 마음들의 회개를 위하여 너희의 기도와 고통, 그리고 눈물을 나에게 봉헌하여라. 나와 함께 기도하여라. 어린 자녀들아, 하느님 없이는 너희에게 미래도, 영원한 생명도 없다. 나는 너희를 사랑하지만, 너희 없이는 너희를 도와줄 수 없다. 그러니 하느님께 ‘예’라고 응답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교회 승인 하에)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가 회개로 초대받은 이 은총의 때에, 나는 너희를 격려한다.


     우리 중에 은총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 중에 하느님께 다양한 은총을 내려주시기를 청합니다. 각자의 처한 상황에 따라 그 내용은 다르지만, 주로 건강, 취업, 결혼, 입학, 승진, 재물, 그리고 가정의 평화 등을 기도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것들이기에, 우리가 하느님께 그것을 청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번 달 성모님의 메시지에서는 이러한 은총들 대신,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가 회개로 초대받은 이 은총의 때에, 나는 너희를 격려한다.”라고 말씀하시며, ‘회개로 초대받는 것’이 진정한 은총임을 일깨워 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회개로 초대하시는 분은 누구이십니까?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을 통하여 우리를 회개로 초대하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우리가 멸망의 길로 가지 않도록 막아 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시려는 깊은 사랑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성모님과 함께 이 지상에서 하느님을 섬기며 기쁨 속에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천국에서 모든 성인들과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이미 성경 곳곳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그리고 성모님의 메시지를 통해 하느님께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상기시키시듯,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가는 것이며,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실제로 그것들은 하나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청해야 할 은총은 세상적인 것이나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이고 영원한 것, 곧 천상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청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회개입니다. 우리가 회개함으로써 온전히 하느님만을 모시고 살며, 그분의 뜻을 언제나 따르고자 할 때, 우리는 이 땅과 하늘에 영적 보물을 쌓게 되는 것입니다. 

     그 보물은 기도와 단식, 자선과 믿음, 용서와 사랑, 그리고 거룩함과 구원, 평화의 열매들로 가득 채워져야 합니다.

     어머니는 자녀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우리의 참된 영적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는, 지금 이 시기에 우리에게 가장 시급하고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이 ‘회개’임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가 회개로 초대받은 이 은총의 때에, 나는 너희를 격려한다.” 

     이 지상에서 우리가 이루는 회개는 하늘도 기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루카 15,7).

     오늘, 아니 바로 지금 이 순간, 회개하여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와 성모님, 그리고 모든 성인들을 기쁘게 해 드립시다. 


어린 자녀들아, 내 아들 예수님의 성심에서 멀어진 마음들의 회개를 위하여 너희의 기도와 고통, 그리고 눈물을 나에게 봉헌하여라. 


     비행기를 타면 이륙 전에, 모니터나 승무원을 통해 안전 수칙에 대한 안내를 받게 됩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 중요한 지침이 있습니다. 어린이와 함께 탑승한 부모나 보호자는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먼저 자신이 산소호흡기와 구명 조끼를 착용한 후 아이에게 착용시켜 주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먼저 준비된 사람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거나 준비할 수 없는 이를 도와야 하듯, 성모님께서도 우리가 먼저 회개한 다음, 다른 이들의 회개를 도우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린 자녀들아, 내 아들 예수님의 성심에서 멀어진 마음들의 회개를 위하여 너희의 기도와 고통, 그리고 눈물을 나에게 봉헌하여라.” 

     우리가 끊임없이 회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도하고, 희생할 줄 알며,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고, 우리 자신과 이웃을 위해 흘리는 눈물을 하느님께 봉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이 지상에 계실 때 누구보다도 그것을 깊이 체험하고 실천하셨기에, 지금도 우리 모두를 도우시기 위해, 우리의 기도와 고통, 그리고 눈물을 당신께 봉헌하라고 초대하십니다. 우리가 정성껏 봉헌한 모든 것을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 바치실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그 봉헌을 통하여 당신의 성심에서 멀어진 영혼들의 회개를 위해 풍성한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나와 함께 기도하여라. 


     혼자 기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기도를 실천해 온 사람이라 해도, 아주 의식적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혼자서 기도를 이어가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적인 기도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하는 기도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무엇이든 함께할 때 더 큰 힘과 시너지가 생기듯, 기도 또한 함께 바칠 때 놀라운 시너지가 일어납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기도해야 함을 분명히 말씀하시지만, 동시에 가능한 한 매일 공동으로 기도할 것을 더욱 강하게 권고하십니다. 가정에서든, 기도 모임에서든, 성당에서든, 혹은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어느 자리에서든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다음 말씀이, 공동 기도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 줍니다.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마태 18,19-20)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서 계신 곳이라면 어디든 당신도 항상 함께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는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향하고 있기에, 우리가 바치는 모든 기도에 성모님도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을 자주 잊거나 의식하지 못하곤 합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 “나와 함께 기도하여라.”라고 하신 말씀을 언제나 마음에 간직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묵주기도를 바칠 때는, “어머니, 저는 지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예수님께 이 기도를 드리오니, 저를 예수님께로 인도해 주소서.” 라고 고백해 보십시오. 또한 자유롭게 화살 기도를 드릴 때는 마지막에, “예수님, 성모님의 전구를 통하여, 이 기도를 당신께 바치나이다.” 라고 덧붙일 수 있습니다.

     기도의 형식이 무엇이든, 어떤 상황이든, 성모님과 함께 기도하는 습관이 우리의 영혼 깊숙이 스며들도록 합시다. 그 기도 안에서 성모님은 언제나 우리를 예수님께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아, 하느님 없이는 너희에게 미래도, 영원한 생명도 없다. 나는 너희를 사랑하지만, 너희 없이는 너희를 도와줄 수 없다. 그러니 하느님께 ‘예’라고 응답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우리는 늘 내일을 준비하며 살아갑니다. 나이가 들수록 은퇴 이후의 삶, 곧 노후 준비에 더 많은 관심과 신경을 기울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안전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험에 가입하고, 연금을 준비하며, 여러 가지 투자를 통해 미래의 안전을 도모하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련하는 그 모든 것들이 우리의 미래를 완전히 보장해 줄 수는 없습니다. 얼마 전 미국 캘리포니아와 우리나라 경상북도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에서도 보았듯이, 예상치 못한 순간, 예기치 못한 일로 인해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과 모든 재산을 잃는 일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어린 자녀들아, 하느님 없이는 너희에게 미래도, 영원한 생명도 없다.” 이 말씀은 우리가 진정 의지해야 할 분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일깨워 줍니다. 성모님은 우리의 모든 희망을 오직 하느님께 두도록 부르고 계십니다.

     온갖 삶의 풍파를 겪은 듯한 시편 저자도 우리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산들을 향하여 내 눈을 드네. 내 도움은 어디서 오리오?

내 도움은 주님에게서 오리니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네 발이 비틀거리지 않게 하시고 

너를 지키시는 그분께서는 졸지도 않으신다.

보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께서는 졸지도 않으시고 잠들지도 않으신다.

주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주님은 너의 그늘 네 오른쪽에 계시다.

낮에는 해도, 밤에는 달도 너를 해치지 않으리라.

주님께서 모든 악에서 너를 지키시고 네 생명을 지키신다.

나거나 들거나 주님께서 너를 지키신다, 이제부터 영원까지” (시편 121, 1-8)


     우리는 우리에게 미래를 열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으로 이끄시는 성모님의 말씀에 따라, 하느님께 언제나 “예”라고 응답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2025년 2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번 봄이 너희에게 개인적인 회개의 격려가 되기를 바란다. 너희의 삶을 통해 하느님을 무엇보다 사랑하며,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린 자녀들아, 나의 평화와 기도의 손이 되어라. 사랑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며, 평화를 원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위해 사랑이 되어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교회의 승인 하에)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번 봄이 너희에게 개인적인 회개의 격려가 되기를 바란다. 너희의 삶을 통해 하느님을 무엇보다 사랑하며,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날씨는 따뜻해지고, 나뭇가지에는 새순이 돋아 꽃이 피어납니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며,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겨울이 지나 봄으로 넘어가는 이 시점에, 성모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번 봄이 너희에게 개인적인 회개의 격려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인 봄을 맞이하기를 바라시기에 이러한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적인 봄을 맞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우리의 ‘개인적인 회개’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온기와 빛, 사랑과 평화로 가득 채워지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의 근원이신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 그리고 삶을 하느님께 되돌리는 과정이 바로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회개를 통해서만 하느님께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특별히 우리의 ‘개인적인 회개’를 언급하십니다. 회개는 항상 우리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이 먼저 회개해야 한다고 말하거나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는 미사의 참회 예식에서 우리가 가슴을 치며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도록 이끕니다.

       온 세상 모든 사람이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우리의 개인적인 회개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한 방울의 빗물이 다른 방울들과 모여 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며, 마침내 바다가 되듯이, 모든 변화는 우리의 개인적인 회개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적인 회개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영적인 봄을 가져다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시어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 주셨습니다(요한 3, 16 참조).이 말씀은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실천적인지를 보여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 주시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나 말이 아닌, 행동하는 사랑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느님을 무엇보다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이는 곧 우리의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각자의 상황과 처지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그 사랑이 반드시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점입니다. 말로만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삶으로는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위선자라 부를 것입니다.

      또한,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겉으로만 사랑하는 척한다면, 그것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 진실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심지어 그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 깊은 곳까지 아시는 하느님을 속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만을 생각할 때는 하느님도, 이웃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먼저 생각하고, 이웃의 처지를 우선적으로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기도와 사랑, 그리고 연민은 늘 함께 가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을 아는 사람은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먼저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신 ‘지금 이 순간, 나 혹은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그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도록 간구합니다. 동시에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며, 구체적인 사랑을 실천합니다.


어린 자녀들아, 나의 평화와 기도의 손이 되어라. 사랑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며, 평화를 원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위해 사랑이 되어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은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님의 어머니이십니다. 이처럼 귀하고 존경스러운 분께서 우리에게 “나의 평화와 기도의 손이 되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감히 무엇이기에 성모님의 평화와 기도의 손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 초대는 세상 그 누구의 초대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영예로운 초대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이 초대를 통해 우리의 존엄성을 한층 높여 주십니다. 우리의 손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존재를 성모님께 내어 드려, 성모님께서 그것을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시도록 한다면, 그보다 더 가치 있고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모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는 자녀들’이라고 부르십니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 심지어 죄 중에 있더라도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느님의 존재와 사랑을 깨닫기 위해 무엇보다도 기도하라고 권고하십니다. 평화 없이 살아가는 인류에게 하느님의 평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마음을 열라고 끊임없이 초대하십니다. 이 부르심과 초대, 권고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온 인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자녀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사랑을 실천하라고 초대하십니다. 비난과 지적, 단죄가 아닌, 공감과 연민, 그리고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 기도하지 않는 사람,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따뜻하게 품어 주기를 원하십니다. 성모님의 이 부르심에 온 마음으로 응답합시다.


   
 
 
2025년 1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해에 나는 너희를 회개로 초대하고 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하느님을 너희 삶의 중심으로 모셔라. 그러면 그 열매로 이웃에 대한 사랑과 증거의 기쁨이 나타날 것이며, 너희 삶의 거룩함이 참된 신앙의 증거가 될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교회 승인 하에)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해에 나는 너희를 회개로 초대하고 있다.

     성모님께서는 ‘이 은총의 시기’라는 일반적인 표현을 자주 사용하시지만, 이번 달 메시지에서는 그보다 더 구체적인 표현인 ‘이 은총의 해’를 사용하셨습니다. 왜 성모님께서 ‘해’를 특정하셨을까요? 이는 교회가 2025년을 희년으로 지정한 사실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24년 5월 9일에 발표하시기를, 2024년 12월 29일 성가정 축일부터 2025년 12월 28일 성가정 축일까지 1년 동안 전 세계 가톨릭 교회가 ‘희망의 순례자들’이라는 주제로 희년을 지낸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를 염두에 두시고, 희년이 시작된 2025년 1월 25일 메시지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해에 나는 너희를 회개로 초대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희년의 개념은 구약 성경 레위기 25장에서 시작됩니다. 시나이산에서 주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 50년마다 희년을 선포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희년은 이스라엘 백성이 빚을 탕감받고, 노예를 해방하며, 잃었던 땅과 재산을 되찾는 등 정의와 자비를 실천하는 시기였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이 전통을 영적인 차원에서 계승하며, 신앙의 쇄신과 하느님의 자비를 강조하는 특별한 시기로 희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교회의 첫 희년은 1300년 교황 보니파시오 8세에 의해 시작되었고, 이후 보통 25년마다 정기적인 희년과 특별 희년이 교황에 의해 선포되고 있습니다. 희년은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체험하고, 다른 이들에게 용서를 베풀며, 평화와 정의를 실천하는 시기입니다. 신자들은 이 기간 동안 성지 순례, 고해성사, 미사 참례, 자선 활동 등을 통해 전대사의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2025년 희년은 25년마다 선포되는 정기적인 희년입니다. 이번 희년은 우리 신앙을 쇄신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깊이 체험할 수 있는 기회로, 이를 위해 우리는 영적이고 실천적인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이 모든 노력의 시작은 바로 회개에서 출발합니다.
      회개는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화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첫걸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처음 하신 말씀도 바로 회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 1,15) 회개 없이는 복음을 진정으로 믿을 수도,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나아가 회개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의 체험 역시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의 예언자로 메주고리예에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성모님께서는 회개가 가장 필요한 덕목임을 아시기에 1996년 2월 25일 메시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너희를 회개로 초대한다. 이것이 내가 여기에서 너희에게 준 가장 중요한 메시지이다.”
      2025년 희년의 첫 번째 달인 1월 25일, 성모님께서는 다시금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해에 나는 너희를 회개로 초대하고 있다.” 1996년에 가장 중요한 메시지로 회개를 강조하셨던 성모님께서, 약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를 회개의 여정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이는 성모님께서 우리의 회개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이 넘쳐 흐르기를 간절히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우리가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어서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고백하고 하느님의 용서를 받음으로써 본격적인 회개의 길이 열립니다. 이 과정은 고해성사를 통해 이루어지며, 고해성사는 참된 회개의 외적인 표징이자 필수적인 단계입니다. 따라서 고해성사 없는 참된 회개는 불가능합니다.
      이번 희년이 우리에게 은총의 해가 되도록, 성모님의 초대에 응답하여 무엇보다 먼저 고해성사를 받읍시다. 고해성사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사탄과 악으로 인해 잃었던 우리의 삶, 마음, 영혼을 되찾아 주시는 은총의 도구입니다. 또한, 고해성사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체험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희년이라는 특별한 시기에 하느님의 자비를 온전히 체험하기 위해, 성모님의 초대에 응답하며 우리의 회개 여정을 시작합시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하느님을 너희 삶의 중심으로 모셔라. 그러면 그 열매로 이웃에 대한 사랑과 증거의 기쁨이 나타날 것이며, 너희 삶의 거룩함이 참된 신앙의 증거가 될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께서 우리를 회개로 초대하시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가 하느님께 구원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관심이 없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신다면 우리의 구원에 대해 염려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모님께서 회개로 초대하시는 것은 우리를 향한 성모님의 깊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늘 사랑이 담긴 음성으로 “사랑하는 자녀들아” 하고 우리를 부르시고, 이번 달 메시지에서는 두번이나 우리를 그렇게 부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길 간절히 바라십니다. 회개한 사람에게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회개 이전에는 자신의 욕망이나 죄가 삶의 중심에 자리했지만, 회개 이후에는 하느님을 중심에 모시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삶의 가장자리로 밀어내거나 완전히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중심에 두듯이, 하느님이야말로 우리의 삶, 마음, 영혼에서 가장 중요한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항상 우리 삶의 중심에 계셔야 합니다.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면,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 마음, 영혼은 물론 육신의 상태까지도 변화시키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채우실 때, 우리의 모든 것이 빛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이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실 때, 그분은 우리 안에 머무르시며,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느님을 더 사랑하려 노력하게 되고, 그 사랑은 자연스럽게 우리 이웃에게 흘러갑니다. 마치 부모의 사랑이 자녀들에게 전해지듯이,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를 통해 이웃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사랑은 이러한 ‘내리사랑’의 형태를 띱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먼저이고, 그 사랑이 이웃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거룩하신 분이며, 우리가 그분을 닮아 거룩해지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레위 19,2). 거룩하신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는 사람은 누구보다 거룩한 삶으로 초대받습니다. 사제, 수도자, 신자 모두가 거룩함으로 불리움을 받으며, 거룩한 삶은 단순히 종교적 열정이나 신심에만 국한되지 않고 정의와 자비를 실천하는 삶을 포함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거룩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삶 자체가 참된 신앙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삶은 바로 이러한 삶입니다. 하느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고, 그분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며, 그 사랑을 자연스럽게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삶. 나아가 거룩함, 정의, 자비를 실천하며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 이것이 바로 성모님께서 우리를 향해 간절히 바라시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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