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때에, 나는 나를 따르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기도하지 않고, 지극히 높으신 분만이 주실 수 있는 평화와 기쁨을 원하지 않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월마트와 같은 대형 마트에 가면,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장을 보는 젊은 엄마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엄마가 물건을 고르거나 잡기 위해 잠시 아이의 손을 놓는 순간, 아이는 금세 다른 곳에 눈길을 빼앗겨 그쪽으로 아장거리며 달려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엄마는 다시 그쪽으로 가서 아이를 데려와 손을 잡고, 다음 물건이 있는 곳으로 함께 이동합니다.
저는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성모님께서 당신의 메시지에서 우리를 ‘어린 자녀들’이라고 부르시는 이유를 더 실감하게 됩니다. 어리다는 것은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아직은 미성숙하여 분별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때에, 나는 나를 따르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여전히 그분을 따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따르고 있습니까? 무엇이 우리의 관심을 끌고,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혹하게 하고 있습니까? 하느님, 성모님, 기도, 그 외 거룩하고 천상적인 것입니까? 아니면 물질, 사람, 혹은 세상의 것들입니까?
현재 우리는 누구의 손을 잡고 있습니까? 성모님의 손입니까, 아니면 사탄의 손입니까? 혹시 지금 우리가 물질이나 세상의 것, 악이나 죄, 그리고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쪽으로 달려가고 있다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우리에게 손을 내미시는 성모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의 손을 잡고,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이 우리에게 은총의 때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아무리 은총의 때를 주신다고 해도, 성모님을 따라가면서 그 은총의 때를 주시는 하느님을 향하지 않는다면 그 은총의 때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기도하지 않고, 지극히 높으신 분만이 주실 수 있는 평화와 기쁨을 원하지 않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성모님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자녀가 기도하고, 오직 지극히 높으신 분만이 주실 수 있는 평화와 기쁨을 원하며, 성모님을 따라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성모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진지하게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실천에 옮기는 것, 그것이 바로 성모님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너희의 영혼이 기다림의 기쁨 속에서 하나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너희의 마음이 평화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11월 25일, 오늘은 화요일입니다. 우리는 이틀 전인 11월 23일에 전례력의 마지막 주일인 ‘온 우주의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대축일’을 지냈습니다. 이제 다가오는 주일은 전례력으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대림 제1주일입니다. 성모님께서 “너희의 영혼이 기다림의 기쁨 속에서 하나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이 전례적 시점을 염두에 두신 것으로 보입니다.
‘대림(待臨)’은 기다림을 뜻하는 한자어입니다. 대림절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성탄)을 기억하고, 나아가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이루어질 그분의 두 번째 오심(재림)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이 대림절 동안 우리는 주님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우리를 위해 지상에서 이루셨던 구원을 완성하려 다시 오실 주님이시기에, 우리는 기쁨 속에서 그분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늘 다시 오실 그분께 향해야 하며, 오직 그분께 향해 있기에 우리의 영혼은 주님과 하나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매일의 일상을 살기 위해 여러 가지 것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며 애씁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들이며,결코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삶의 목적은 이 지상에서 주님을 우리 삶의 첫 자리에 모시고 그분의 뜻대로 살다가,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영혼은 주님과 늘 하나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의 마음은 참된 평화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아, 모든 것이 잘될 것이며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축복해 주실 것임을 너희는 확신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잘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잘되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선결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과의 일치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하나 되어 있을 때, 그분 안에 머물러 있을 때만 모든 것이 제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요한 15, 4-5)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잊고, 주님 없이 우리의 인간적인 힘과 의지, 그리고 계획만으로 모든 것을 이루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 모든 시도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다 잘되려면, 우리는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그분의 뜻을 따르며 그분께서 가르쳐 주시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만 하느님의 축복이 우리 안에 머물고 우리의 모든 일이 잘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시편 저자의 말씀을 늘 우리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 1, 1-3)
너희가 베푸는 선이 다시 너희에게 돌아오며, 너희가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 있기 때문에, 기쁨이 너희의 마음을 감싸안을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세상 만물을 먼저 만들어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환경과 조건을 아무런 조건 없이, 무상으로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시는 하느님을 닮은 존재로 창조되었기에, 자신이 받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선하신 하느님처럼 선을 베푸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것을 아까워서 마지못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모든 것은 하느님께로부터 무상으로 받은 것이니,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마음으로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선으로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베푼 선을 되돌려 받으려는 마음조차 가지지 않을 때, 그 선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선으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설령 그것이 우리 생애에 되돌아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하늘에 보화를 쌓았기에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 있기 때문에, 기쁨이 너희의 마음을 감싸안을 것이다.” 하신 성모님의 말씀은 얼마나 감미로운지요!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인데, 그 기쁨이 우리의 마음을 감싸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술, 마약, 육체적 쾌락, 돈, 그 외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결코 기쁘게 만들지 못합니다. 그것들이 주는 기쁨은 아주 일시적이며, 오히려 그 이후에 더 깊은 슬픔과 불안을 가져다줍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늘 기뻐할 수 있는 단순하지만 가장 심오한 길을 제시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언제나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현재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방향을 가르쳐 주시고 방법도 제시해 주시지만, 결코 우리를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선택을 존중하시고, 우리가 그분의 부름에 자발적으로 응답했을 때 감사를 표하십니다. 우리의 선택과 응답은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인데, 왜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응답했을 때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분께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의 어머니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받는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